첫눈이 온다네
올해는 첫눈이 늦었다.
어제 12월 4일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되었다.
좋은 추억으로 자리했으면 좋으련만 그 장면이 꿈에라도 나올까 두렵다.
성당미사 끝나고 지인들과 생태탕 맛나게 먹은 다음
3시쯤에 집에서 회사로 나오게 되었다.
저녁 6시부터 숙직이 걸렸기 때문이다.
미사드릴 때 창 밖으로 소담스레 내리는 눈이 얼마나 좋은지...
한편으로는 눈 온 길을 서둘러 가야하기 때문에
식구들과 더 일찍 떠나야 한다는 중압감과 미안한 마음,
첫눈인데 사진도 한 번 못 찍고 가는 서운함...
우째 서두가 길다...
오후 세시쯤에 출발했다. 도착전 세시간 전에 출발하는 거였다.
날이 좋아 도로의 눈은 거의 다 녹은 상태다.
곧 눈이 퍼부어대고 차들은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기어코 멈추고 만다.
10분을 기다려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평소에 잘 다니는 지름길로 차를 돌려서 가기 시작했다.
이미 도로는 눈에 쌓여있고 차가 지나간 곳만 평행선이
길게 네 줄로 파여 있다. 그 외는 한 20센치미터쯤 눈으로 쌓여있다.
한참을 느릿느릿 가고 있는데 내가 가는 방향으로 할머니 한 분이
차가 다닌 길로 들어와 걸어가고 있다.
양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듯 계속 가는 길을 가고
하는 수 없이 내가 중앙선을 넘어서(안보인다 중앙선이) 가고 만다.
20센치미터의 눈턱을 넘어서 상대편 한쪽 파진 골에, 다른 쪽은
내 차선 파진 골에 한 바퀴씩 집어넣고 몇 초 달리자마자
차가 갑자기 요동을 친다.
차에 노래를 틀어놔서 그런지 좌우로 몸을 트위스트를 몇 번 추더니
뒤쪽 엉덩이가 먼저 나간다. 오매... 안디야...
2단 정도 속력으로 20키로미터 정도인데...
드디어 나도 사고를 치고 말았다.
180도 돌아서 반대편 차선을 넘어 조수석 바퀴 두 개가
아스팔트 밖으로 나가서 주저앉아 버렸다.
지나와서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다시 내 앞에서 뚜벅이고 걸어온다.
그리고 힐끗 보더니 ‘잘 됐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지나간다.
‘제 시간에 도착하기는 글렀구먼...이거 우짜노...환장...’
내려서 보니 차에 손상은 없다. 다만 빠져서 나오지 못할 뿐...
보험사 응급지원반에 연락하였더니 가까운데 있는 견인차를 부르니까
기다리란다. 무작정 기다렸다. 한 시간이 흐르니 나타난다.
전동 밧줄을 당기니 어렵지 않게 나온다. “고마워요~”
이미 5시가 넘었다. 날은 더 추워지고 태양은 마실갔는지
그림자도 안 보인다. 길이 장난이 아니다.
더 조심스러워진 운전에, 늦었다는 불안감에 속이 탄다.
첫 번째 외치재 고개에서 한참을 차들이 꿈지럭댄다.
나는 체인도 없는데 저 고개를 오를 수나 있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개 도중에 차가 서게되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건 미친짓이야...’ 하면서 고개를 오른다.
앞에서 코란도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빨간 엉덩이를 뽐낸다.
기어코 앞차가 서 버린 것이다. 난 어쩌라고...
다행이 반대편에서 차가 오지 않아 추월을 하고는
속력을 늦추지 않고 가슴 졸이며 고개 끝까지 올랐다.
오르면 뭣하나? 내려가는 길을 반대편 차량이 다 막아버렸다.
내려가는 길이 급경사라 트럭에 차들이 뒤엉켜 움쭉달싹도 못하고 있다.
30여분 기다리니 정의의 기사 등장! 트랙터가 밧줄로 하나둘씩
끌어올리고 있다.
한 시간쯤 가니 그 이름마저 두려운 ‘밀재’가 나타났다.
오르는 길이 2km 쯤 된다. 내 차가 저기 오를 수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성호를 긋고는...심호흡을 하고...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싸~ 염화칼슘을 뿌려서 오르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눈이 다 녹은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오르다가 내려오는 차 때문에 추월도 못하고
정지하고 말았다. 다시 출발하는데 차가 미끄러진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오기로 왱- 하면서 페달을 밟으니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길로 밀재도 올랐다.
다시 두 개의 고개를 남겨두었다.
나머지도 어찌어찌, 용감함을 가장한 무식함으로,
하늘의 도우심으로 6시간에 걸친 지옥체험을 마치고
회사에 도착했다.
평소에 회사입구에 들어서면 아무 생각 없었는데
발전소 주변의 환한 불빛이 왜 그리 반갑고 감격스러운지...
이미 3시간 15분 늦었다.
나와 같이 밤을 새야할 동료들에게 무용담을 들려준다.
다들 혀를 내두른다. “그래 나 무식하다! 어쩔껴!”
당직실 주변은 한 50센티미터는 쌓인 거 같다.
주차장에 주차하려해도 차가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오늘도 또 눈이 내린다.
첫눈이 참 많이 내린다. 좋은 추억대신
악몽의 추억을 선사했구나.
“어쨌든 감사합니다. 저의 든든한 빽이신 주님~”
200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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