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꽃 - 김홍진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살인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평화적이라는 말인가보다.
꽃이 사람의 품성을 짓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사람의 마음에 담게 되면
이차적으로 풍성이 다듬어지고, 품성으로 나타난다고 여겨진다.
좋아하는 꽃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대게 금방이 나온다.
한 이주일 전에 무슨 신문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1위를 차지하는 것들을 나열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그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장미라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도 장미다.
그 중에서도 주황색이 선연한 장미를 좋아한다.
마치 튤립을 생각케 하는 주황색 장미!
초등학교 6학년 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이 며칠 여유를 주며 자기가 좋아하는 꽃에 대해 작문을 해오라는
숙제를 내준적이 있었다.
그 때는 무슨 꽃을 좋아할 만큼 내적 성숙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꽃을 정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이루어질려나 바로 옆에는 형의 중학교 국어 책이 눈에 띄였고
뒤적이다가 "오랑캐꽃" 이라는 내용의 글이 실려있었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원고지에 베껴버렸다.
다음날 무작위로 선생님이 지목하여 각자 쓴 글을 발표하기 이르렀고
운좋게(?) 나에게도 차례가 왔다. 자랑스럽게 일어나서 공책을 든
두 손을 뻗어 읽어내려갔고, 뒤이어 선생님의 칭찬도 들었다.
꼭 내가 쓴 것 마냥 으시대면서 말이다.
몇차례 다른 아이들이 쓴 글도 발표되었고,
일어나서는 않되는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 글을 나 혼자만 베낀게 아니라 또 다른 범죄자가 있었던 것이다.
신산에 사는 S라는 여자 아이가 뜸들이고 미적거리다
한 두어줄쯤 읽었을 때, 내 얼굴을 빨간 자두같이 익어
책상 아래로 익어서 익어서 벼 모가지 모양으로 떨궈지게 되었다.
60여명이 되는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고 아무도 웃는 아이가 없었다.
차라리 매라도 맞았으면 속죄라도 되었을 것을 선생님은 아무 질책도
하지 않으셨다. 그 후로 오랑캐꽃은 두고 두고 내가 미안해하는 꽃이
되었고 더 눈이 가게 되었다.
그 사건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가 남자다움을 조장하는 분위기에
많이 노출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무슨 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가까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아마 크면 장미꽃을 좋아하게 될꺼라는 생각은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면서 차츰 스스로의 생각에 가로 세로 줄도 그으면서
또렷하게 판단되었던 부분중의 하나가 꽃인가도 생각해봤다.
남자가 울 수 있고, 남자도 꽃을 좋아할 수 있다는 조그만한 승리!
내가 좋아하는 꽃은 장미였다. 가장 좋아하는 꽃은 선명한 주황색,
막 피기시작하는 때의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는 것도 알아냈다.
하지만, 왜 그 꽃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시원한 대답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그냥...예쁘니까?
나이가 먹어가는 징조일까는 모르겠지만 요즈음은 야생화에 눈이 간다.
특히 꽃 모양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야생화.
봄이면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까치꽃이라든지 냉이꽃,
여름이면 지천에 깔린 개망초꽃, 괭이꽃, 개울가의 물봉숭아꽃,
가을이면 들국화, 쑥부쟁이꽃, 어디 이들 뿐이랴!
작은 꽃에 무릎굽히고 하나하나 생김새를 뜯어보면
어떤 때는 감탄사가 절로나오고 괜스레 미소짓게 한다.
안면도에 가면 꽃을 가꿔놓은게 좋다더라- 보다는
누가 자기 사는 곁에 야생화를 가꿔 놓았더라-라는 말에
귀가 더 솔깃해지는 거를 보면 "시골놈이 뭐 별 수 있냐"하는
자조의 웃음이 나온다.
더욱 확연해 지는 것은, 스스로 나는 어떤 꽃을 제일 좋아하니,
어떤 꽃이 밉다느니 하고 생각을 놓아버리고
두루 꽃을 찾고 신이 주신 선물을 마음껏 좋하하는
얽메이지 않는 생각이 마흔을 넘는 때에 하게 된다.
내가 한 일흔이 되어 누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묻게 된다면
혹시 이런 대답이 아닐까?
"가장 좋아하는 꽃이요? 없어요! 다 좋아요. 모든 꽃은 아름다워요!"
그리고 되 물어야지-
"그런데,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꽃이 시들면 그 꽃도 좋아하시나요?"
2004.6.24 헉! 내일이 육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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