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36일에 걸친 장기간의 발전소 정비업무를 마치고 평가의 시간을
가졌었다. 끝나고 집에 가려 만반의 준비를 다해놨었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장님의 한 말씀...
"오늘 저녁에 회식 합시다. 여기 나오신 분,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시고
그동안 힘들었던 점 풀어봅시다." 하시는 게 아닌가.
아~ 오늘도 무너지는구나. 쩝~
6시 40분까지 식당으로 나오라는데, 전에 맡았던 설비가 문제가 있다고
고생하는 걸 아는지라, 세명이서 끙끙대는게 안쓰러워 후딱 손봐주고나니
7시가 넘었다.
뭐...까짓 늦으면 어때. 늦게가면 술 적게 먹고 좋지뭐...
하면서 식당으로 향했거니.
식당에 도착하니 7시 20분 쯤 되었다.
빈자리가 눈에 띄여 아무도 모르게 살짝 앉았는데 하필 옆테이블에
실장님 대머리가 눈에 화악 들어온다. 이크~~
자리를 잘 못 잡은게지.
"야~ 김진홍!" 왜 내 이름을 꼭 김진홍으로 거꾸로 부르는거야, 신겅질나게스리..
"네! 좀 늦었습니다."
"너 한 잔 받어!" 하시네. 뭐...한 잔 쯤이야...
그런데 주는 술잔이 왜 소주잔이 아니고 유리컵-그라스 ㅋㅋ-인 거야?
다행이 따라주는 술병의 술이 한 잔 밖에 안들어 있다. ^0^
오매? 다 따르고는 옆에 있는 소주병을 들고 또 따르시는게 아닌가!
나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넘쳐 저 만큼 술을 주시나부다...
그라스에 한 3분의 2쯤 부어서는 나에게 넘겨준다.
ㅋㅋ 까짓거 다른 데다 좀 부어 좀만 마셔야지. 내가 뭐...술꾼인가? ㅎㅎㅎ
살짝 입에 대고 조금 먹고는 내려 놓으면 되잖아~ 역시 난 (^^)Y
얼굴을 살짝 옆으로 틀고는 작업을 진행하려하는데 실장님의
황당스러운 한 마디...
"야~ 너 원샷이다. 노털카. 알쥐?" 음매...나 둑었다 C~ ㅠㅠ
아...원망스러운 빈자리... 왜 여기에 앉았던고.
마시려는 찰나에 수 많은 회한에 가심이 무너진다.
오늘 단단히 걸렸군! 어쩌고 하면서 주변 과장들이 웃고 난리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과장들이다.
오늘은 늘씬 패주고 싶다.
나에게 잔을 전해준 실장님은 또렷한 눈길로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치켜뜨고 계신다.
소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때는 고3 때 제천변전소에 실습나갔을 때였다.
그 때는 순진해서 고등학생이 술마시면 죽는 줄 알았다.
성인이 되어서야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효소가 저절로 생기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마시면 안돼는 줄 알았다. (물론 구라다 ㅋㅋ)
난생 처음 마시는 소주고 내 주량이 얼마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던 술... 이미 졸업하여 변전소에서 근무하는 선배의 강압적인
횡포에 소주 한 병을 먹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날...나 디지는 줄 알았다.
영광에 86년도 첫 발령을 받고 또 강압적인 분위기가 시작되었다.
그 때는 영광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시작할 때라 사뭇 전투적인 분위기였고
힘들게 술을 배웠다.
내 주량은 소주 두 잔이었다. ㅎㅎㅎ
두 잔을 마시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두 잔 마시면 옆에서 자기 때문. ㅋㅋㅋ
다른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다는데 나는 왜 졸린지... Zzz....
이제는 소주 한 병 정도 마실 수는 있지만 여전이 술이 두렵다.
하지만 술은 사랑한다. 술도 나를 사랑한다.
술이 들어오면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힌다. ㅎㅎㅎ 사랑해~ 쪽~~♥
에구.....얘기가 곁길로 갔네!
그리하야.... 실장님이 주는 그라스 소주를 피해갈 수가 없었는데
까짓...마시려면 리얼하고 터프하게 마시자!
바로 단숨에 벌컥 벌컥 1.58초 결려서 한 방울도 안남기고 쪼옥 빨았는데
옆에서 과장들이 우와~한다.
밉던 과장들의 얼굴들이 이뻐지기 시작한다. 뽀뽀라도 해줄까? ㅋㅋㅋ
아무튼...그리하여 술 잔 다시 돌려주고 백세주 1센치만 따라주고(불공평하닷!!!)
났더니...술 기운에 무섭게 올라온다.
빈 속에 그라스로 먹었으니...술빨 받지. 안 받겠어?
나중에 소줏잔으로 연거푸 세 잔을 더 받았다. 그 실장한테서...
대략 내 주량을 초과했다.
2차로 서울에서 오신 박부장님 숙소에 들르기 위해 맥주사고 쎈 술 한 병 사고
숙소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쳐지는걸 느낀다.
몇 잔 마시고 일찍 내 원룸으로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술 정말 싫다. 술? 그리고 겁나게 좋아한다. 왜이리 상반된다냐...
밖을 쳐다보니 소줏빛 빗방울들이 겁나게 창에 부딪히며 내린다.
술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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