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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김홍진 
Subject  
   남자와 여자는 대화방법이 다르다
길어서 죄송...


    
♥♥♥ 남자와 여자는 대화방법이 다르다♥♥♥

  
'이브'는 그녀의 유방에서 혹을 떼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그녀는 언니에게 유방에 칼집을 했다는데 대해
아주 기분이 언짢았다고 슬픈 감정을 토로했다.
또 흉터 때문에 유방이 볼품 없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에 그녀의 언니는
"나도 잘 알아. 나도 그 수술을 받았을 때 똑같은 감정을 느꼈어."
라고 동생을 위로했다.
  
이브는 그녀의 친구인'캐런'에게도 언니에게 했던 것과 같은 넋두리를 했다.
이 친구도 마찬가지로
"나도 잘 알고 있어. 아마 너의 처녀성을 잃었을 때와 같은 기분일거야."
라고 이브를 달래 주었다.
그러나 이브가 그녀의 남편인 '마크'에게 상한 기분을 이야기했을 때
마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그 흉터를 지우기 위해 성형수술도 받을 수 있어.
그러면 당신의 유방은 옛날과 같은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야."
  
이브는 언니나 친구에게서 위로의 말을 듣고는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크의 말에는 오히려 화가 나는 것을 자기도 어찌할 수 없었다.
마크가 한 말은 위로가 못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원했던 위로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녀는 남편의 말에서 수술을 더 해야 한다는 요구가 담겨있다고 판단했다.
수술로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또다시 수술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그래서 그녀는
"나는 이제 더 이상 수술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버럭 화를 냈다.
"당신이 수술자국이 있다는 것을 싫어한다니 참 안됐어."
라고 하면서 마지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몸에 상처가 있다고 해도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진정이야."
라고 마크가 다시 미안하다는 듯이 위로했다.
그녀는 다시
"그렇다면 왜 나에게 다시 성형수술을 받으라고 말했죠?"
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그러했다.
"당신이 수술자국을 걱정하고 그 상처를 못 견뎌 하는 것 같아서였지."
이브는 마크가 비열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수술을 받을 때만 해도 아주 큰 관심을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유방에서 혹을 떼내는 수술을 받도록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가 한 행동이 전혀 비난받을 성질이 아닌데
단지 말 한마디를 꼬집어 그렇게 남자를 몰아칠 수가 있는가?
그녀의 이유는 남편의 말에서 둘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파괴할수 있는 암시를 잡았다는 것이다.
  
마크 자신은 자기의 말이 아내의 불평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브는 남편의 말을 자기의 불평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남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불평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다시 수술을 하면 수술자국도 쉽게 없앨 수 있기 때문에
그까짓 이야기는 불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수술자국을 없애는 성형수술이 가능하다는 남편의 말에서
이미 남편이 자기의 수술자극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단정짓고 있다.
더구나 수술 후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위로의 말을 들으려 했던
그녀는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는
남편의 말을 통해서 자기에게는 불평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이브는 자기의 처지를 동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마크는 위로해줄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충고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기 감정을 이해한다는 확인을 받으려고 했으나
자기 남편은 문제 해결사의 입장을 보이려 했다.
  
이와 비슷한 오해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친 부인과
남편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쉽게 나타나고 있다.
부인은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이 싫어서
남편에게 빨리 퇴원시켜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부인은 퇴원순간부터 병원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움직여야 했었기 때문에 곧바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인이 끙끙거리는 소리를 참지 못한 남편이
"병원에 그대로 입원해 있었으면 오히려 편했을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
고 꾸짖듯 말했다.
  
남편의 이런 소리가 부인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 부인은 남편의 말을 집에 있는 자기를 귀찮아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남편은 부인이 아프다고 호소를 하니까
병원에 계속 입원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데도
부인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이 고통을 호소하는 자기의 불만을 무마하고자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의 말을 오히려 별개의 동떨어진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즉 그녀는 남편이 집에 있는 자기를 귀찮아한다고 해석해 버린다.
  
  
"그 문제는 내 자신의 것이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여자들이 자기들의 고통에 남편이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반면,
남자들은 오히려 여자들이 문제에 사사건건 개입하려 든다고 화를 내기가 일쑤다.
일부 심한 남자들의 경우에는 여자들이 문제를 파고들려하면
달갑잖게 생각할 뿐 아니라 공격받고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남자 동료가 늙었다고 걱정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솔직한 감정을 전한다고 치자.
이 여성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하는 남자 동료에게
"나도 당신의 감정을 잘 알고 있다.나도 물론 당신과 같은 감정을 느꼈으니까."
라고 말했다.
뜻밖에도 그 남자 동료가 자기의 감정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함으로써
자기로부터 무엇인가를,
즉 자기만의 경험을 빼앗아 가려 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오해는 다음에 보는 남녀 대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대화는 처음에는 부드럽게 시작되었다고 나중에는 논쟁으로 끝난다.
  
남자: 지난 밤에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더니 아주 피곤하군.
여자: 나도 잠을 못 잤어. 그렇지만 나는 전혀 피곤하지 않은데.
남자: 당신은 왜 나를 어린애처럼 만들려고 안달이지?
여자: 전혀 그런 뜻은 없어요! 나는 단지 당신이 피곤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 여인은 남편의 반응에 마음 상해 할 뿐
남편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이 어떻게 해서 자기를 어린이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어린아이로 만든다'는 말은 곧 '경험을 비하시킨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관계를 두텁게 해보겠다는 부인의 의도를
남편은 자기 식대로 판단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인의 의도가 자기의 독립을 구속하고 자기를 비하시키려는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린 것이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그것을 고쳐주겠다"
  
여자든 남자든 각자의 고통을 표현하다가 상대방의 반응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당황해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마음을 상하기고 한다.
여자들의 불만이, 남자들이 여자들로부터 고통을 들으면
해결책부터 제시하는 것이라면 남자들의 불만은,
여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그 고통을 해결하려 들지 않고
불평만 반복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을 문제해결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불평이나 고통은 곧바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도전쯤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여 자가 고장난 자전거나 자동차 장난감을 남자들에게 내놓을 경우
남자들에게는 '도전'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도 물건을 고쳐야 할 때는
남자들에게 곧잘 부탁을 하면서도 각자가 처한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남자들이 나설 경우 이를 선뜻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게 때문에 남자들이 진정으로 여자들의 문제를 돕겠다고 나섰다가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는 커녕 오히려 욕을 먹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떤 한 남자는 여자친구가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늘어놓기만 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도 그것을 따르지 않아 미칠 지경이라고 호소한 적도 있다.
이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네가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이냐. 네가 나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면 달리 도리가 없어."
라고 호소하듯 말해도 여자친구의 결심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자는 여자들이 대부분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것을 끌어안고 영원히 그 문제를 늘어놓기를 원한다고 단정지었다.
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든지 아니면
호탕하게 웃어넘긴다는 것이다.
  
원래 의사 소통은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직장에서나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찰 등을
떠벌리는 여성의 경우에는 불만의 핵심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그 대화에 따르는 암시라고 볼 수 있다.
즉 누군가에게 고통이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불만을 듣는 상대방으로부터 이해를 구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 때 상대방은
"나도 지금 너의 감정이 어떤지를 잘 알고 있어."라든지
"나에게도 너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나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거야."
라고 대답해 주면 그만이다.
다시 말해 각자가 겪고 있는 고통을 호소한다고 하는 그 자체는
상대방으로부터 "우리 둘은 똑같아. 그러니까 외로워하지 말아라."라는
암시를 받아냄으로써 상호관계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고통을 호소했는데도 이런 반응이 없다든가
오히려 충고를 듣게 되면 여자들의 경우 상처를 받게된다.
이는 상대방의 충고에서 "나는 너와 같지 않다.
너는 고통을 앓고있지만 나는 해결 방법까지도 알고 있다."라는 암시를 얻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면 상호이해는 바로 대등한 관계와 쉽게 연결된다.
이런 관계들이 더욱 발전하게 되면 공동체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언을 하거나 충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는 지식도 많고,
보다 이성적이며, 감정 통제를 더 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총고를 하는 사람이 우위에 서게 된다.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은 대등관계에서 이탈하는 셈이다.
  
충고를 주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우위에 선다는 가정은
다음에 예로 든 서평에 잘 나타나고 있다.
론 칸슨(Ron Carson)은 앨리스 에덤스(AliceAdams)가 쓴
'After You've Gone'에 대해서 평을 하면서
이 소설이 더젊은 여자를 찾아 떠난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인이 보내는 편지라고 말했다.
칼슨에 따르면 이 여인은 전 남편에게 자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은밀하게 자기의 충고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칼슨은 이 여인이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전 남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과시한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을 쓴 작가의 본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든지 간에
서평자가 조언을 주는 입장에 놓인 사람을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상대방의 고통에 공감을 표시한다
  
앨리스 매티슨(Alice Mattison)이 쓴 작품 'New Haven'에는
여자들이 친구들로부터 어려움을 듣고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가 잘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일리너'라는 여성은 친구 '패치'에게
자기가 어느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패치는 일리너로부터 고백을 듣고 처음에는 이해한다고 입장을 전달하고
뒤에는 자기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패치는 "그래! 너의 감정이 어떤지를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어떻게 보면 나도 너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거든. 글쎄 나도 고백해야 하겠지.
나는 2년 전부터 유부남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있단 말이야."
  
그러면서 패치는 일리너에게 유부남과의 일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전한다.
대충 자기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에 패치가 화제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네가 너의 애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했지 않니.
내가 괜히 말을 잘라서 미안해. 나는 원래가 내 이야기를 못 참는 성미라서."
"괜찮아." 그러나 그녀는 다시 즐거워졌다.
  
이들의 대화는 다시 일리너의 남자 문제로 돌아왔다.
결국 패치는 일리너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전달함과 동시에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함으로써 서로가 비슷한 처지임을 강조,
일리너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패치는 자신의 고통을 같이 이야기함으로써 자칫 개인적인 문제를 노출시키는 데
따를 수 있는 상하 신분관계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렇게 함에 따라 이들의 우정도 별 타격을 받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일리너가 패치에게 비밀을 고백하면서도 즐거움을 계속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두 사람이 서로 고통을 이야기하는 방법에 있어서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
비록 일리너가 자기의 문제를 먼저 끄집어내기는 했지만 패치가 나서서
이야기를 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 전에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았다.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작품 "The Knit-ting'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베스'라는 여인이 병원에 입원중인 조카에게 가기 위해
언니네 집에 같이 머물고있다. 언니와 같이 지내는 동안 베스가 남자친구로부터
귀찮은 전화를 받는다. 이 전화를 계기로
자기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 베스는 그 문제를 언니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언니가 물어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꾹 참고 있다.
베스는 오히려 언니를 찾게 된 이유인 조카의 병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주에 남자친구와 싸웠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언니가 전화에 대해서 전혀 묻지 않았기 때문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베스는 오히려 병원에 입원중 인 언니의 딸 '스테파니'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고통을 나누는 대화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연대의식을 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이를 적절히 조절하고 있는 셈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대화방식에 불만을 표현할 때
여성의 대화 스타일에 기준을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자들은 다른 누군가가 고통을 호소해 오면 그 상대방에게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함으로써
일단 관심을 표명한다. 이런 까닭에 남자들이 대화의 주제를 바꾸게 되면
여자들은 당장 남자들이 동정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이는 곧 친밀감이 깨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고통을 호소하는 상대방에게 그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묻지 않는 것은
한편으론 그 상대방의 독립을 존중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소설에서 일리너가 패치에게
한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을 때 패치는
"너는 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있느냐?"라고 물었었다.
이런 식으로 남자들에게 사생활을 물을 경우
대부분의 남자들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고 단정하고 불쾌한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일리너는 이런 식의 질문을 오히려
우정을 두텁게 할 수 있는 관심의 표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대화 상대가 되는 여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여자에게,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위안을 할 경우
그 여자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단정한다. 이렇게 되면 남녀는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려다가 더 벌어지게 만드는 꼴이 되고 만다.
  
  
질문을하지 말아라
  
고통에 대한 대화도 남녀가 시각을 달리하는 무수히 많은 것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길을 묻거나 정보를 요청하는 대화에서도 남녀의 시각차가 뚜렷하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남녀가 길을 묻는 행위를 놓고도 이견을 보이는 사실도
그런 대화에서 지위라는 암시를 받느냐 아니면
대등한 관계라는 암시를 받느냐로 잘 설명이 된다.
  
워싱턴에서 열린 한 민속축제의 안내센터에서 남녀 한쌍이 주춤거리고 서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신이 나서서 물어보지. 나는 묻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동차 운전석 옆에 않자 있는 '시빌'이 운전석에 않은 남편을 향해서 씩씩거리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목적하고 있는 길을 찾아 헤매면서
이미 반시간 가량을 허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시빌이 화가 난 이유는 남편인 '헤럴드'가 길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길을 물을 생각은 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보겠다고 고집 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물론 시빌이 화를 내고 있는 것도 순전히 자신의 시각으로
남편을 보고 있다는 데 원인이 있다.
만약에 그녀가 운전을 하고 있는 입장이라면
길을 잃었다고 판단이 되는 순간 길을 물을 것이 확실했다.
이런 그녀에게는 길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일찌감치 길을 물었다면 벌써 친구 집에 도착해서 따뜻하게 지낼 텐데라는 생각이
간절해졌으며 따라서 더욱 화가 났던 것이다.
  
시빌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서 전혀 언짢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길을 잃고도 길을 묻지 않는
헤럴드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헤럴드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그 자체를 별로 내키지 않는 행동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길을 끝까지 찾겠다는 태도가 지극히 정상이다.
헤럴드는 길을 타인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찾음으로써
길을 물을 때 느껴야 하는 언짢은 기분을 피할 수도 있고
아울러 자존심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남자들이 길을 묻거나 정보를 요청하는 일에 거부감을 보이는가?
또 그런 반면 여자들은 왜 이런 질문을 쉽게 할 수 있는가?
이 질문 역시 길을 묻거나 정보를 요청하는 대화에 내포되어 있는 암시,
즉 독립이냐 친밀도이냐로 풀이될 수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런 대화에서 독립을 생각하게 되고
여자들은 친밀도를 떠올리게 된다.당신이 누군가에게 정보를 제공하게 되면
그 정보 자체가 메시지이다.
  
그러나 남이 가지지 못한 정보를 당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정보를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암시를 주게 마련이다.
만약에 인간관계가 본래 계급적인 것이라면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게 된다.
이 말은 곧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능력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관계를 상하조직으로 보는
남자들에 거는 자기가 가야 할 길을 혼자 힘으로 찾는 것이
자존심을 유지하는데 최소한의 전제조건으로 비치게 된다.
만일 여행시간을 약간 허비하더라도 자존심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시간을 낭비하는 쪽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암시는 대화 속에 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간파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시빌이 헤럴드에게 길을 모르면서도 왜 사람들에게 묻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의 대답은 사람들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내세운 이유는 사람들에게 묻는다고 해도
모르거나 엉뚱한 방향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이 말도 이론적으로는 맞을 수 있다.
왜냐하면 멕시코의 경우에서와 같이 길을 묻는 사람에게
모른다고 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길을 가르쳐 주는 국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빌로서는 남편의 설명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녀 자신도 사람들이 길을 엉터리로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지만
그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생각이다.
또 그런 일이 자기들에게만 일어나라는 법이 없다는 판단이다.
설사 사람들이 길을 잘못 가르쳐 주더라도
이렇게 헤매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빌의 경우 길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이 차라리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애써 길을 엉터리로 가르쳐 주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헤럴드는 '모른다'라고 말하는 자체를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길을 정확하게 모를지라도
나그네에게 엉뚱한 길이라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처럼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만큼
합일점을 찾기란 지극히 어렵기 마련이다.
오히려 대화를 계속할수록 합일점을 찾기는 커녕 불신의 폭만 넓혀 가는 꼴이 된다.
이렇듯 사람들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겉에 드러난 단어만 가지고 뜻을 해석하려 한다
. 그러나 그 대화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한 동기나 암시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는 불화를 극복하기가 어려워진다.
  
남에게 정보를 주거나 길을 가르쳐 주는 일,
또 도움을 주는 일이 그것을 받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두사람의 관계를 두텁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로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거나 받는 사람간에는
상하 신분관계가 형성된다.
즉 정보를 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의 위치에 선다면
그 정보를 받는 입장에 놓인 사람은 지식이 부족한 사람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이거야말로 지위를 이동시키는 협상의 일종이라 할 수있지 않겠는가.
  
정보를 주는 사람이 그 정보를 받는 사람보다 높은 지위에서는 경우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식들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설명하는 부모들이나,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도 바로 그러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인류학자인 '하루미 베푸'는 일본의 만찬장에서도 이런 관계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파티를 이끌어 갈 주빈이 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주빈이 분명하게 알고 있을 질문만을 찾아내느라고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 주빈이 위엄을 갖추고 대답하게 한다.
상하 신분관계가 형성될 위험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남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구하거나 길을 묻지 않으려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 대상이 여자일 경우에는 특히 더하다.
또 여자들도 이런 점 때문에 자기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남에게 전달할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특히 그 대상이 남자라면 몇 배 더 주의한다.
나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 남자는 이제야
얼마 전에 자기 부인이 했던 말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무릎을 쳤다.
이들 부부는 차를 같이 타고 어디를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목적지는 부인은 알고 있는 곳이었지만 남편은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남편은 스스로 길을 찾아보겠다는 욕망을 꾹 누르고
부인에게 목적지에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는 가라고 물었다.
이에 부인은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빠른 길을 가르쳐 주고도
"하지만 이 길은 내가 이용하는 길이니 달리 지름길이 있을지도 몰라요" 라고 덧붙였다.
부인이 이 말을 덧붙인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고
남편이 모르고 있는 길을 자기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생길 수 있는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만약의 경우 남편이 자기가 제시한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을 생각해서
미리 체면을 살릴 구멍을 만들어 놓자는 의도도 다분히 들어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가 방향을 제시하는 행위가 '지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추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려는 뜻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고 그것을 고쳐 주겠다."
  
정보를 가졌거나 줄 수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되는 상하관계 암시는
물건을 고치는 기술을 보유했거나 그것을 과시하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행위에 내포된 암시를 파악하기 위해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카메라 플래시에 달린 건전지 뚜껑을 열 수 없었던 나는
그 카메라를 들고 카메라점으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그 카메라점의 점원은 내 카메라를 받아들고 동전 몇 개를 번갈아 가면서
뚜껑을 열어보다가 여의치않자 특별한 도구를 동원해서 다시 시도했다.
이 기구를 이용해서도 뚜껑을 열지 못하게 되자
그 점원은 뚜껑을 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박혔다고 설명했다.
그는 뚜껑을 열 수 없게 된 이유를 꽤 상세하게 설명한 뒤에
풀래시를 켜지 않고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비록 나는 그 점원이 가르쳐주는 방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진을 찍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
도 관심을 가지는 척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그는 또 이 방법으로 사진을 찍으면 플래시를 켜는 것보다
월등히 좋은 사진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의 중요도를 최소화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을 아주 유익한 기술을 가진 인물로 그리면서
비록 내 카메라를 고치지는 못했지만 문제만은 해결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 점원은 나를 진정으로 도우려 했고 나 또한 그 점을 높이 샀다.
그러나 그가 카메라를 고치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정보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내보이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사교 활동의 남녀 차이를 간파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에게 도움을 청하면서도 물론이고
도움을 받으면서도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감사의 표현도 쉽게 한다.
반면 남자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 일로 인 해약간의 불편을 느끼더라고 그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식한다.
  
한 남자가 이웃의 여인으로부터 차를 좀 고쳐 줄 수 없겠는가라는 요청을 받고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한참 후 그는 차를 고치는 데 필요한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고 그는 실토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이튿날 그 여인은 차의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고 인사를 했다.
그 자신이 차가 나아질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과 감사를 표시하는 행동에서 균형을 취하는 방법이다.
여자나 남자나 다같이 이런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이 여자의 경우는 그가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감사를 표시하고 있으며
그 남자는 실제로 도움을 주지 못했으면서도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사회 계약'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런 예는 뉴욕의 길모퉁이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23가와 팍 애비뉴 사우스에 있는 전철역을 빠져나오던 한 여인이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는다. 매디슨 애비뉴로 가려던 그 여인은
매디슨이 팍의 서쪽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길을 찾자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무작정 자기 눈앞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그 행인은 여인에게 매디슨 애비뉴가 이렇게 남쪽에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이 틀리다는 것을 그 여인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이 때에는 그 여인도 방향감각을 어느 정도 찾은 후였다.
그러나 그 남자에게 "잘 알겠습니다."나 "걱정 마세요. 당신의 도움이 없어도 됩니다."라고
말하지는 않고 그 남자가 대답할 수있는 질문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어느 쪽이 서쪽이지요?"라고 물었으며 간단하게 대답을 얻은 뒤에는
"감사합니다. 바로 서쪽으로 걷고 있었군요."라고 감사를 표시했다.
  
굳이 이 대화가 길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면 애초부터 이들의 조우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 여인은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니었고
남자 또한 도움을 줄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인이 남자를 불러 세운 진정한 목적은 방향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뉴욕시의 한 시민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대도시의 인간집단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겠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또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죽은 한이 있더라고 당신을 도와 주겠다"
  
'마사'는 컴퓨터를 처음 구입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작동 요령을 알고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배워야 될 것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컴퓨터를 구입한 가게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그녀를 도와주기로 되어 있었던 그 남자는 마사로 하여금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우둔한 바보라는 생각을 갖게끔 만들었다.
그는 기계구조를 설명하면서도 전문용어를 동원했으며 그 때마다
마사는 단어의 뜻을 일일이 물어야만 했다.
그런 만큼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도 높아만 갔다.
더구나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그 남자의 말투 때문에 이러한 느낌은 더욱 깊어 갔다.
이 남자의 말투에서 마사는
"이것은 너무나 쉬운 것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다."
라는 암시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아무리 마사가 정신을 집중한다 해도
다 이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막상 집으로 돌아와서 컴퓨터를 대했을 때는 그 남자를 찾기 전이나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숨을 지었다.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그녀는 일주일 후에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이번에는 컴퓨터에 대해서 충분히 알 수 있을 때까지
점원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각오까지 했다.
다행히도 여자가 마사를 도우러 나왔다.
이제 도움을 받는다는 경험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그 여직원은 가급적이면 기술적인 언어를 피하려 노력했으며
어쩔 수 없이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게 될 때도
그 때마다 단어의 뜻을 알겠느냐고 물었으며 마사가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마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그 여자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인데."라는 암시가 전혀 숨어 있지 않았다.
또 작동하는 것을 설명할 때도 마사가 직접 하도록 했다.
  
일주일 전에 마사에게 컴퓨터를 가르쳤던 그 남자와는
가리키는 방법면에서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마사 자신도 그 전과는 판이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바보 같다는 감정은커녕 자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자신감까지 생겼던 것이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정보나 지식을 전달할 때
상대방을 혼란하게 하거나 수치심을 가지도록 하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 중에서도 훌륭한 교사가 많다는 점이 이를 입증해 준다.
그러나 여자라고 해서 모두가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마사가 경험한 것과 똑같은 케이스를 말하는 여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자동차나 컴퓨터등 전문적인 장비를 사들이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남자들이 장비에 대해서 설명할 때보다 여자들이 설명을 할 때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는 도움을 주는 행위를 놓고 남자와 여자가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만약에 여자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중요시한다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양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또 그렇게 지식을 독점하지 않고 공유함으로써
상호간의 이해도를 높이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여자들은 서로 비슷하거나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지식을 주는 입장에 있는 여자일지라도
그 목소리에는 상대방을 지원하겠다는 암시가 깔린다.
비록 이런 지원 자체가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남자들이 대화를 통해서 지위를 확보하려 노력하고
쌍방 중 어느 한편이 높은 지위에 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우위에 서는 편이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대화를 경험하면서 남자들은 정보나 지식, 기술을 가진 편이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익히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자들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가급적이면 상대방이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를 즐겨 쓰는 것도,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함으로 해서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데
따르는 즐거움이 배가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희열도 상대방이 지식을 얻어 가면서 차츰 줄게 된다.
남자들의 이러한 태도는 어떻게 보면 단순히 고급지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의 이론을 잘 알고 있는 한 동료는 학술회의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의견을 발표하던 한 여자교수는 발표 도중에 간간이
"지금까지 내가 발표한 내용을 모두 이해했습니까?"라고 참석자들에게 묻곤 했단다.
나의 동료는 이것과 관련해서 그 여자교수의 주요 관심은
참석자들이 발표 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있는가였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나의 동료는 학술회의 등에서 발표를 할 때는 혹시 내 의견에 반박하거나
도전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까에 가장 많은 관심을 두었다고 실토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이 지식이 권력이 세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더욱 엄밀히 볼 때 다른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느냐고 묻는 자체가
그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보나 전문적인 지식, 기술들을 가졌느냐 여부가
여자들에게는 중요한 힘의 척도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여자들은 남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파워가 강해지는 것으로 느낀다.
  
  
"나를 믿어주오"
  
한 여인은 자기 남편이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을 들추어내서
자기를 공격했을 때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당시에 VTR이 고장나서 TV에서 방영되는 명화를 녹화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도 VTR을 들여다 보고는 영화를 녹화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이에 그녀는 이웃에 사는 해리씨에게 가서 한번 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전에도 한 번 이런 고장을 해리가 고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리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고장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그녀의 남편은 부인이 자기의 기술을 믿어 주지 않는 데
대해 화가 잔뜩 났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몇 년도 더 지나 그 때 일을 끄집어냈을 때
그녀는 놀라서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은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나요? 해리가 죽은 지도 옛날인데!"
이 사건은 비록 그녀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남편에게는 자존심을 송두리째 뽑혀 버린 사건으로 각인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부인이 그때 한 행동은 그가 가지고 있던 지식과 기술을
한꺼번에 의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같이 차를 타고 가는 부부 사이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스탠'이 운전을 하는 도중, 옆에 타고 있던 부인 '펠리시아'가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는 몸짓을 한다.
이에 남편이 "나는 지금까지 사고를 낸 적이 없어. 왜 당신은 내 운전 실력을 믿지 못하지!"
라고 버럭 화를 낸다.
하지만 펠리시아로서는 진실을 남편에게 그대로 전할 길이 없다.
그녀가 놀랐던 것은 남편의 운전 실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운전 자체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이 왜 작은 일에도 그토록 대단하게 화를 내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친절하라"
  
어떤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가지거나 기술을 익히게 되면
남자 여자 할 것없이 자존심을 내세우게 된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나 지식은 근본적으로 여성적인 면보다 남성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전통적으로 볼 때 여성은 정보나 지식을 주는 입장이기보다
그런 도움을 받고 감사를 표시하는 입장에서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중에도 여성이 고마움을 잘 표시한다는 인식은
미국 각 우체국에 부착되어 있는 포스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 포스터는 고객들로부터 비판과 제안, 질문, 찬사를
솔직하게 받겠다는 의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언어로 하게 되어 있는 이 네 가지 행동 중에서 세 가지에는 남자로 그려져 있고
한 가지, 즉 찬사를 아낌없이 표현해 달라는 부문에만
여자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 묘하다.
  
이 여자모델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있으며
손가락으로는 대단히 만족한다는 표시를 하고 있다.
또 그 여자모델의 머리 주변에는 빛이 발산하는 모양의 후광까지 그려져 있다.
이 후광이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이는 남에게 고맙다거나 찬사를 표시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
친절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정보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에게 찬사를 보내는 행위 자체도
깊이 파헤쳐 보면 상하관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이 한 일이나 결과를 평가한 후에야 찬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어머니나, 사회사업가, 간호사, 카운슬러 등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을 통해서도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많이 하는 이런 여러 가지일,
특히 어머니나 간호사로서의 역할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른다고도 볼 수 있다.
  
  
"별도의 동기가 있다"
  
남자와 여자들은 다같이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을 때도 그 동기는 다른 경우가 많다.
또 비록 같은 활동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일을 하는 목적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상대방을 오해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카메라에 얽힌 사건에서도 이 문제가 노출된다.
나는 가족이 다 모이는 자리가 있어서 그 카메라를
손재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시동생에게 가지고 갔다.
카메라를 받아든 내 새동생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한 시간 반쯤 지나서
고쳐 가지고 나왔다. 기대보다 빨리 수월하게 고쳐 나오기에
나는 기뻐서 그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너의 아버지가 도전을 즐겼던 모양이지."
그 딸은 내 말을 듣고는 "특히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면 더 진지하게 하지요."라고 설명했다.
나는 재빨리 그가 카메라를 고쳐준 최종 목적이
카메라를 고치는 것이라는 내 판단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챘다.
그가 카메라를 고쳐 주었던 것은 나에 대해 관심을 표시하려는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면,
내 시동생은 카메라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도움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었던 나의 한 동료는
내가 이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점을 한 가지 놓치고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많은 남자들이 물건을 고침으로써 자신감을 얻게 되고
무엇인가를 지배할 수 있다는 쾌감을 만끽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기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그가 아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주문했던 플라스틱 회전목마가 배달되는 과정에서
약간 파손되었다. 그의 부인이 그 회전목마를 집안에서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소문난
그녀의 삼촌에게 고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삼촌은 몇 시간이 지나서 고칠 수 있었지만
그 장난감이 몇 달러도 안 된다는 사실에 비하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녀의 삼촌은 그 장난감을 돌려주면서 너무나 수고가 많았다는 말에
"고칠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밤을 새워서라도 고쳐야 하는 성미죠."라고 말했다.
이런 경험담을 나의 동료는 플라스틱 물건을 지배하겠다는 동기가,
고쳐달라고 부탁한 사람을 돕겠다는 동기보다 더 강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 동료는 부서진 물건을 고쳐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여자일 경우에
그 물건을 고쳐냄으로써 무엇인가 지배할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이런 경우 대개 여자들이 감사와 감탄을 동시에 표시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여자인 나는 남자들이 돕는 행위 그 자체를
동기로 생각했지만 남자인 내 동료는 남자들이 남을 돕는 주된 동기가
기술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된다.
대등관계에 익숙하기 쉬운 많은 여자들은 도움을 받거나 주는 데
별다른 저항을 느끼지 않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일부 도움을 주거나 지원을 보내는 역할을 맡을 때만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여자들도 있지만 이런 여자들은 극히 드물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지위고하에 민감하고 여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남자들의 경우
대다수가 정보나 도움을 주는 입장에 설 때만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경치만큼이나 남녀의 사고는 다르다
  
앨리스 매티슨이 쓴 'The Colorful Alphabet' 에는 '조지프'라는 남자가
얼마 전에 부인과 이혼한 '고돈'이라는 친구를 시골집으로 초대를 한다.
여기에서 등산을 하게 되는데 하산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피로를 풀게 된다.
휴식을 취하던 중 고돈이 문득 배낭을 산꼭대기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돈은 등산에 서툴 뿐 아니라 발까지 아팠기 때문에 조지프가 대신 산을 올라서
그 배낭을 찾아오기로 했다. 조지프의 부인도 같이 가기로 했지만
그녀는 정상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조지프는 부인을 중간 지점에서 기다리게 해 놓고 혼자 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가 다시 부인을 만났을 때 그의 손에는 있어야 할 배낭이 없었다.
그는 부인에게 정상에 배낭이 없을 줄 이미 알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휴식을 취하던 중 누군가가 그 배낭을 들고 가는 것을 그가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돈이 배낭을 두고 왔다고 말했을 때
누가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지 못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그것을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다른 사람이 배낭을 가져가는 것을 뻔히 보고도 돌려 달라는 말도 못하는 바보라는 점만 강조하는 꼴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하는 대신 전혀 엉뚱하게 그 배낭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행동에 화를 냈다기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남편이 누군가가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것 같더라고만 말하면 될 것을
그 힘든 산을 다시 한 번 오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도 남자에 대한 나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조지프는 고돈을 돕고 싶어했다.
아울러 자기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그의 욕망이 산에 오르고 싶지 않다는 충동보다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편의 이러한 행동을 되새기는
부인의 말에 잘 나타나있다.
나는 내 남편이 그러한 일을 할 것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못했다.
나에게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꿈속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한마디로 말해 조지프는 나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의 부인이 이렇게 말하게 된 이유는 여자와 남자들이 세상을 접근하는 방법에서
다른 길을 택하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이 같은 확신을 굳힐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만약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 각자가 익혀온 세상과 완전히 다를 세상을 접하게 된다면
누구나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확신을 얻어내기 위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대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가장 가까운 인물들이 어떤 행동이나 사물을 대할 때
우리와 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식으로 말을 할 때
우리는 각자가 버티고 서 있는 지반이 갑자기 불안하게 느껴진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
각자 밟고 있는 이 지반을 튼튼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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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와 여자의 대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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