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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김홍진 
Subject  
   의탁(依託)
의탁(依託)

이번 성탄을 보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의탁이라는 경험이리라. 사전적으로
‘어떤 것에 몸이나 마음을 의지하여 맡김’이라는 의미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헤쳐 나가지 못해 책임을 전가하는 열등의식 냄새를 풍기기조차
하지만 두 단어가 주는 의미를 나름대로 짚어보면 가만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은 조물주가 만든 피조물이고, 혼자서는 절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허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혼자 해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 밑바탕엔 자기 외의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머리
속에 녹아있고 피와 땀이 조력(助力)하고 있음을.

  이 번 성탄시기에도 예외 없이 내가 속해 있는 성가대에서 성탄에 맞는
성가를 위해 11월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네 성부에 맞게
성가대원들이 고르게 배치되어 무리 없이 미사곡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특히 남성 파트에 사람들이 없이 초반부터 고전하였다.
  삼사십대 남성들은 대게 사회에서 많은 부분 직장에 시간을 할애하고 퇴근
시간마저 잔업이나 회식으로 들쭉날쭉한 시간 때문에 정해진 연습시간을
맞추는 게 힘든 실정이다 보니, 아무도 나오지 않거나 고작 한두 명 연습에
참가하다보니 제대로 미사곡 연습이 될 리가 없다.
  보다 못한 지휘자님이 각 파트별로 연습할 수 있도록 씨디를 만들어 주었으나
바쁜 일상에 쫒기는 사람에게 큰 도움은 주지 못하였다. 다행히 재작년에 불렀던
이종철 신부님의 미사곡이었는데 문제는 그 때에 있었던 성가대원들이 나와
나하상바오로를 포함하여 둘 뿐이라는 것이었다.
  고흥으로 발령받아서 주말부부가 된 백 세바스티아노 형제님은 걸죽한 베이스가
탁월하지만 미사곡은 이번이 처음이다. 3년 전에 같이했었던 박 스테파노 형제님은
그동안 쉬고 계시다가 사정사정을 하여 고맙게도 합류하였다. 11월에 용감히
입단하신 박 프란치스코 형제님, 미국유학중에 잠시 부모님을 뵈려 귀국하였다가
연습에 참여한 윤 요한 형제님, 이렇게 여섯 명이 급조되어 12월 초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마지막 한 주가 되어서야 겨우 음이 맞게 되었는데 책임지시는 지휘자님이야
그 속이 얼마나 탔으랴 -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드셨다 한다.
  테너파트를 맞고 있는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유행가에 익숙해져 있는 목을
미사용으로 바꾸기 위해 차 안에서 발성연습, 파트 연습을 하다가 성탄전야 3일을
남겨두고 목이 쉬게 되었다. 발성의 기초조차 모르는 사람이 혼자 연습한 것이
화근이 된 셈이다. 테너 솔로를 책임지고 대신할 사람이 마땅하지 않은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나 무책임한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하루 목을 쉬게 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마음을 다독였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도 목은 여전히 잠긴 채 허툰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이 없으면 깡이 나오는 법인가.
  내 일도 아니니 하느님께서 책임지라고 출근길에 묵주기도를 바쳤다. “모든 것
주님께 의탁하오니 주님 뜻대로 하소서”. 완전한 의탁을 바랬지만 어느새 마음
속에서 살금살금 걱정이 피어오르고 그 때마다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했다.
‘저를 위해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다 당신 때문에 이런 것이니 마음대로 하세요.
미사 때 소리 안나오면 다 당신이 손해잖아요. 잘 되면 당신께 모든 영광
드릴께요’

  성탄전야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달리는 차 안에서 조금씩 소리를
질러본다. 답답했던 목이 조금씩 소리가 되기 시작한다. 예전처럼 완전한
목소리가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무리가 없으리라는 믿음이 생겨
났다. 각 구역별로 장기자랑에서 허둥대며 남자 성가대원 여섯 명이 삼중창으로
‘저 못가의 삽살개’를 나름대로 신명나게 불러 끝내고 넉살좋게 관객좌석에 떠억
하니 자리 잡고는 장기자랑을 구경했다. 더 이상 연습해봤자 목을 혹사시키는
것뿐이니.

  미사가 시작되고 Kyrie, Gloria를 성가대가 잘 해냈다. 그 중에 테너 솔로
부분이 있었지만, 속으로 ‘당신 맘대로 하시요잉’하는 깡으로 고군분투하여
자리에 앉았는데 지옥에서 천국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전야 미사가 끝나니
이미 시간은 성탄절이다.
  어느 때 보다도 힘들었던 한달 여의 여정과 기쁨을 대원들과 같이 나눌 때
나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마도 당신께서는 당신 손해 보는
일을 원하시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과 비교하여 합창이 떨어지는 점도 있었으나 외부 대원의 도움 없이
본당 스스로의 인원으로 해낸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이 세상 가장 보잘 것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몸소 오신 그 분께, 그 보다
얼마나 더 위에 있으려 했었던가. 그 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나 자신의 모두를
의탁할 때이며, 그 분과 하나가 될 때이며, 이 때에 비로소 진정한 평화와
기쁨이 찾는 것을 어렴풋이 체험할 수 있었다.

2004.12.2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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